아버지와 아들, 또 그의 아들

아버지와 아들, 또 그의 아들

by 황가네 막내 (Posts: 0) » about 5 years ago

"Mom, I am studying!" 큰애는 엄마의 부름에 대답대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요즘들어 부쩍 큰애의 신경이 날카롭다.  대입을 앞둔 수험생들이나 하는 신경질을 스물 여섯살 짜리가 늦깍이 공부하면서 큰척을 하는 것이다. 흠칫 기분이 상해 물러서는 아내를 위로했다. "애가 이제 진짜로 공부를 좀 하나봐"  큰애는 지금 대학원과정 마지막 학기 중인데, 실제로는 의학대학원(의대) 3년째 재수 중이다. 의대에 떨어져서 대학원 다니면서 의대에 재도전 하려고 하는 중이다. 누구도 의사가 되라고 강요한 적은 없다. 본인 스스로가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의료선교를 하겠다고 결심해서 그길로 가려 하는데, 미국에서 의사되는게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는것을 아들은 요즘 뼈져리게 느끼고 있는 중인것 같다.  본인도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니까 평소 '물러 터진' 성격도 요즘은 많이 예민해져 있다. 그래도 큰애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아버지로서 자랑스럽고 기분이 좋다. 
 
나의 아버지도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좋아 하셨다. 오남매중 막내인 내게 기대를 많이 하셨고, "공부 열심히 해서 출세해라" 하는 말씀을 늘 하셨다. 당신은 열세살부터 농사를 지으셔서, 아들들은 공부를 해서 시골을 떠나 공무원이 되거나, 회사에 취직해서 넥타이 메고 월급을 또박또박 받는게 아버지 기준으로의 '출세'였다. '재치기와 자식 자랑은 감출수가 없다'고 했던가. 아버지는 어릴적 총명함을 보인 막내 아들을 목마에 태워 동내방내 자랑을 하고 다니셨다. 내가 국민학교 입학전에 형과 누나들 어깨 넘어로 배워서 암산을 좀 잘했었나 보다. 아버지는 저녁 무렵 어둠이 내린 마을에 나를 목마 태우고 다니시면서 아직도 하루일이 안끝나 마당에서 일하고 있는 동네 사람들을 발견하면, "우리 애한테 셈좀 물어봐!" 하시며 궁금해 하지도 않는 마을 사람들에게 질문을 채근 하셨다. 마을 사람들은 마지못해 "쌀 한가마니에 삼만 오천원이면 다섯가마는 얼마여?" 하는식의 질문을 하곤했다. 
 
커서 '출세' 하기를 바랫던 아버지의 소박한 기대는 내가 사춘기를 겪으며 말썽만 부리고 공부를 하지 않으니까, 점점 기대를 내려 놓으시는 눈치셨다. 때론 심한 말썽을 부려 아버지가 나서서 고개를 숙이고 아들을 대신해 용서를 비신 적도 있었다. 그럴때도 손찌검은 안하셨는데, 나를 보는 아버지의 실망한 눈빛은 매보다 더 아팠던 기억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는 공부하는게 전혀 즐겁지 않았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아는 모범생 동창 녀석이 나를 '인간승리'라고 기특해 했듯,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목표 없이 하늘로 날아간 화살 같았다. 이민와서 대학 다닐때는 영어가 시원찮으니까 졸업후 쉽게 직장을 잡을수 있는, 적성과 무관한 전공을 선택했고, 서른 넘어서는 밑천 적게 들고 돈벌이 할수있는 방편으로 공부를 선택했다. 철저히 먹고 살기위해 공부를 했지 학문적 호기심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두 아들들이 자랄때,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별로 아들 자랑을 못해 봤다. 왜 주변에는 그렇게 공부 잘하고 똑똑한 애들이 많은지 우리 애들은 공부로써 자랑할 '깜'은 못됬다. 오히려 애들이 작은 실패를 했을때, 용기를 북돋아 주기는 커녕 실망스러운 눈빛과 잔소리로 이미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주곤 했다. 돌이켜 보면, 나의 아버지의 '창피함을 모르는 순수했던' 자식 자랑이 나의 잠재 의식속에 남아서 느즈막이라고 공부를 할수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그런면에서 보면 나는 나의 아버지 만큼 두 아들들에게 아버지로써 해준게 없다. 
 
막내 아들이 아버지 기준으로 '출세'를 했을때 아버지는 아이처럼 기뻐하셨다. 현지 교포신문에 난 아들의 기사를 스크랩하여 액자에 넣고 집안에서 제일 잘보이는곳에 걸어 두셨다. 동내사람들이 마실을 오면 쉽게 볼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늘 그렇듯 마을 어르신들은 황씨네 막내아들 자랑에 이미 이골이 나셨는데도 말이다. 
 
5년째 치매를 앓고 계신 아버지의 남은 기억이 어디에 머물러 계신지 난 잘 모른다. 그렇게 이뻐했던 막내 며느리도 기억을 못하시는것을 보면 꽤 많이 옛날로 돌아간것 같다. 가끔은 아버지의 기억이 자랑스럽지 못했던 막내아들의 시절로 돌아가 계시지는 않을까 불안하다. 왜 그렇게 좋아하시던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와 함께... 어차피 지워질 남은 기억이라면 막내아들 목마 태우던 기억에 오래 머물어 계시다 가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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