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과 군수

이장과 군수

by 황가네 막내 (Posts: 0) » about 5 years ago

차승원. 유해진 주연의 십수년전에 개봉된 영화 제목이다. 어린시절 대장 노릇을 하는 친구는 이장이 되고, 꼬붕 노릇을 하던 친구가 군수가 되서 인생 역전이 일어나면서  발생하는 우스꽝 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코메디 장르였다. 그때의 인연이었는지 몰라도 그 두 주인공은 영화후에도 나영석PD의 리얼러티 프로그램에 종종 출연한다. 지금은 두사람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민박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데 편집을 감안해 보더라도 두 사람은 순수하고 인간성이 좋은 사람들 같다. 그래서 그런지 두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농촌이 오버랩되고 오래전 보았던 '이장과 군수'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곤 한다. 
 
나의 아버지는 평택군 포승면 희곡리 이장을 30년 가까이 장기 집권(?) 하셨다. 이장은 기본적으로 무보수 선출직인데, 학급의 반장처럼 리 단위의 주민들이 뽑는다. 임기가 2년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30년 가까이 연임하신것을 보면 아버지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신임이 꽤나 두터우셨나 보다. 비록 학교는 국민학교까지 밖에 다니지 못하셨어도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셔서 아버지는 명필이셨고 모르시는 한문이 없으셨다. 이장으로써 아버지가 하시는 일은 면에서 내려오는 행정이나 지침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또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는 마을사람들이 행정처리에 미숙한 부분들을 도와 주시는 일을 하셨다.  그 당시는 군사정권 시기여서 시골 마을이라 하더라도 면의 행정관할을 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면장은 꽤나 끗발이 있어 보였다. 면장이 가끔 동내를 방문하기라도 하면 아버지는 부대장이 시찰나온 사령관을 맞이하듯, 이리저리 종종걸음으로 뛰어 다니시면서 면장이 말이라도 하면 연방 허리를 굽히셨다. 한두번 면장을 집으로 모시고 오신적이 있었는데, 그러실때면 집 대문을 들어 오시며 "면장님 오셨다!" 하고 큰소리로 식구들을 불러 인사를 시키셨다. 마치 '암행어사 출두요!' 하고 외치는 포졸처럼 아버지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마치 삭게오가 예수님을 집으로 맞듯, 아버지는 면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누추한 당신의 집을 방문한게 자식들에게나 마을사람들에게 여간 자랑스러워 하시게 아니었다. 
 
어린 나의 눈에 비친 면장은 아버지 또래의 배가 뿔뚝 나온 사람이었는데, 잘 웃지를 않고 말을 천천히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면장에게 극존칭을 쓰는데, 그 면장은 아버지를 약간은 하대하듯 대했다. 지금 같으면 영특한 아이들은 그런 상황에서 당돌하게 따질텐데, 유신정권 시절의 시골 아이의 눈에도 그런 광경이 전혀 이상하게 보여지질 않았다. 오히려 거만한 면장의 행동이 마치 레이방 선그라스를 끼고 허리춤에 권총을 찬 대통령을 연상시키며 멋있게 느껴졌었다. 
 
그런 유년시절의 체험때문인지 아니면 남자로써의 일반적 권력욕인지, 나는 사십즈음에 오십살이 되면 고향에 돌아가 평택군수(지금은 시장이겠지만)에 출마하겠노라고 가족과 부모님께 공언을 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구체적인 로드맵까지 세웠었다. 먼저 내가 살고있는 시에 시의원를 2년 하고 시장을 3년 정도하다가 한국에 나가서 출마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 당시 내가 살고있는 시는 인구 2000명 정도의 조그만 시여서 시의원은 자원봉사자에 가깝고, 시장도 봉사직에 가까워서 하려고만 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한국가서 미국서 시장도 했다고 포장하고(사실은 사실이니까) 미군 기지로 둘러싸인 평택에서 미국물 먹은 내가 군수직을 잘할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돈 벌이로 군수 하려는것도 아니고, 그동안 열심히 살아 부모로써 애들 뒷바라지 다 해줬고 이제는 평택군민을 위해 재능기부도 하면서 평생 세상에서 어깨를 못펴고 사셨던 부모님의 기를 한번 펴드리겠다는데 뭐가 잘못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미국에서는 장치인이나 공무원을 Public Servant 라고 지칭하는데 직역하면 '시민의 종'이다. 다시말해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받아 생활하니, 국민의 종, 즉 국민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의미이다. 한국에서도 선거때만 되면 후보자들에 유권자들에게 절을 해가며 국민의 종이 되겠다고 공언을 한다. 그러나 나의 눈에는 평생 공안검사로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이 더 큰 권력을 갖고자 출마하거나, 가진자들에게 뺏어 노동자들에게 나눠 주자는 사회주의 정신으로 평생 기존 권력에 대한 투쟁과 노동운동만 한 사람들이 과연 온 국민들의 진정한 Public Servant 이 될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앞선다.  그둘중 누가 승자가 되건 나머지 패배자들은 힘을 모아 그 승자를 나무에서 떨어뜨리려는데 온 정열을 다 바치고, 그리고 또 그런 악순환은 지금도 계속 반복되고 있는것 같다.  
 
결과적으로 나의 무모한 정치계획은 시작도 못해보고 끝이났다. 애들이 대학만 들어가면 끝일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그때쯤이면 돈 걱정 안하고 살줄 알았는데 그렇게도 않됬다. 무었보다도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셔서 평생 민초로 사셨던 아버지의 어깨를 한번 펴드리고 싶었던 생각도 아버지의 치매와 함께 필요 없어졌다. 결국 우리집에서 평택 군수는 나오지 않았고, 아버지가 희곡리 이장으로써 가장 큰 권력을 잡은 인물로 남게 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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