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살자
우리 같이 살자
3개월만에 다시뵌 아버지는 혈색이 좋으셨다. 처음엔 나를 사촌형으로 착각하셨는데, 십분쯤 지나니까 당신의 아들임을 인지하시고 30초 간격으로 똑같은 질문들을 반복하셨다. "어디 살어?" "밥은 먹고 살어?" 그러시다가 아들의 흰머리를 보시고는 아들의 사는 수준을 파악하신듯 감정을 주체하시지 못하고 울컥 하시면서 "우리 같이 살자" 하는 말을 반복 하셨다. 당신의 눈에 비친 아들의 안위가 안되 보였는지, 아니면 침대에 갇혀 쪽창문쪽만 바라봐야하는 당신을 구해 달라는 외침이었는지 아버지는 막내 아들에게 같이 살자 하신다.
요즘들어 젊은시절 고민 했어야 할 '인생의 처음과 끝' 에 대해서 생각해 볼 계기가 자의반 타이반으로 많이 생긴다. 내 주위에는 와이프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독실한 크리스쳔인데,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도 그들은 내가 크리스쳔이 되기를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다고 한다. 나한테는 '보이지 않는것이 보이고, 믿겨지지 않는것을 믿는' 그들의 믿음이 경외스럽기까지 하는데, 타인인 나의 '끝'을 걱정해 주는 그들이 참 대단한것 같다. 나는 나의 아버지의 '끝'도 아주 가끔씩 밖에 걱정하지 않으니 말이다.
언젠가 미국 친구에게 '세상에서 가장 안좋은 질병이 치매'라고 했더니, 그 친구는 의아해 하면서, '암 보다도?' 하면서 반문을 했다. 그렇다. 몸속에서 육체를 갉아먹는 암덩이 보다도, 기억을 갉아 먹는 치매가 더 고약하다. 아버지한테 인정받고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픈 아들의 바램도, 세월의 지혜를 전해주고 싶은 아비의 마음도, 추억을 간직하며 '끝'을 향해 가야할 아름다운 노년도, 이 치매는 모두 갉아 먹는다.
얼마전 아내와 아버지의 신앙에 대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천당에 가실까' 하는 얘기를 나눈적이 있다. 아버지는 소시적에 교회를 열심히 다니셨고, 치매전에는 성경을 자주 읽으시고 교회에 다니셨는데 아내는 시아버지가 과연 구원을 확신하는 크리스쳔 이셨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것 같았다. 나는 아내와 괜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말을 아꼈지만, 아버지의 치매를 보고 있으면 영혼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치매라는 육체의 질병으로 정신에 이상이 생기는데, 정신과 영혼은 다른 것인가? 사람들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병마의 고통을 겪다보면 인간은 이기적이 될수 밖에 없고 남을 배려할 정신적 여유가없다. 젊어서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할수는 있어도 늙고 몸이 병들면 육체가 정신을 지배한다고 생각된다.
아버지와의 추억여행은 매번 더 오래된 추억으로의 여행이다. 아버지의 기억이 점점 더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번에 뵜을때는 힘들게 농사를 짓고 살았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아버지는 객지에서 고생하고 있는것 같은 아들이 안스러워 고향에서 아버지랑 '같이 살자'고 하시는 것 같다. 직장생활에 눈치나 안보고 생활하는지, 밥이니 안굶고 사는지 아버지는 많은 부분 끊어진 뇌신경 속에서 아들의 안위를 순간이나마 걱정하신다. 아버지의 뇌신경 회로가 완전히 꺼지면, 그 다음은 무었일까? 그것이 '끝'일까? 영혼이 있다면, 그것이 끝이 아니라면, 아버지의 영혼은 좋은데 가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