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자리

묘자리

by 황가네 막내 (Posts: 0) » about 3 years ago

나는 상주 황씨 시정공파 26대 손이다.황씨 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조차 생소한'상주 황’씨지만, 아버지는 족보. 종친에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셨다. 내가 태어나고 살았던 시골 마을은 상주황씨들이 많이 모여사는 '씨족촌'이었는데, 가을이면선산에서 ‘향’이라는 공동 조상 제사를 지냈다.  아버지는 당신의 조부대까지 제사를 집에서 따로 지냈고, 제사날에는 직계 손들이 우리집에 와서 같이 제사를 지냈다. 아버지는 제사날이면 지방을 쓰시면서 나에게 제사 지내는 분의 프로파일을 설명해 주시곤 했다. ‘너의 증조 할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셨고, 자손은 어떻게 되고’ 등등.. 어린 내가 듣기에 큰 벼슬을 하신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자랑스러워 하실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버지가 나에게 뿌리를 잊지 말라고 그러신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의 형제 관계는 위로 형님, 누님이 계시고, 이복 동생들이 네분 계시다. 나는 순진하게도 ‘이복’의 의미를 중학생이되서야 알게됬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우리 오남매는 아버지. 엄마.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살았었다. 할아버지의 둘째 부인인 '작은 할머니'는 건너 마을에 살고 계셨는데, 종종 우리집에 와서 할머니한테 ‘형님’이라고 불러서 어린 나는 작은 할머니를 그저‘이모 할머니’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작은 할머니의 자식들을 ‘청량리 작은 아버지’, ‘LA 작은 아버지’, ‘막내 작은 아버지’, ‘막내 고모’ 이렇게 불렀고, 집안에 누구도 나에게 이런 복잡한 관계를 설명해 주지 않았었다. 제사때나 명절때는 작은 아버지들이 빠짐없이 우리집에 왔고, 아버지. 어머니에게 '형' '형수'하며 따르며 우애있게 지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그런 관계을 몰랐던게 당연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가족의 비밀(?)를 작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비로서 알게 됬다. 할머니는 작은 할머니보다 2년쯤 먼저 돌아가셨고 할아버지 묘 옆에 모셨는데,작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니까 묘자리를 어디로 할것인가가 대두가 됬다. 처음에는 할머니 묘 반대편에 할것같은 분위기 였는데, 엄마가 강하게 반대를 하셨다.생전에 할머니가 '작은 할머니와 합장은않된다'고 말씀하셨다고 하시며 평소 엄마 답지 않게 당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셨다. 작은 아버지들은 엄마의 반대에 별다른 말씀을 않하셨는데, 평소 작은 아버지들과 사이가 좋았던 엄마가 그렇게까지 정색을 하며 반대한게 어린 나의 뇌리속에도 의아하게 남아있었다. 결국, 엄마의 주장대로 작은 할머니의 묘는 할머니할아버지 묘에서 20여미터 떨어진 곳에따로 모셨다. 
 
아버지가 평소에 우리들 앞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보였던 반면,엄마는 할아버지에 대해 좋게 말씀하시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추측컨데 엄마는 두집 살림을 한 시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있으셨을 뿐더러, 남편을 빼았긴 시어머니에게는 같은 여자로써 연민의 정을 느끼셨던것 같다. 그런 까닭에 작은 아버님들. 막내 고모에게는 한이 되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생전 시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합장을 반대를 하셨다. 시어머니가 저승에서라도 할아버지를 독차지 하시도록 당신에게 향한 비난도 감수 하신것 같다.
 
작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10년쯤 지났을때, 아버지는 미국 생활을 정리하시고 다시 옛 고향에 정착하셨다. 그리고 나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은 작은 할머니 묘를 할아버지 묘 옆으로 이장하신 일이었다.아버지는 “이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됬다.산 사람이 더 중요하다” 하시며 당신의어머니 유언를 어기고 이장을 하셨다. 그때 나는 가보지 못했는데 미국에 계신 작은 아버지도 오셔서 아버지. 어머니 손을잡고 펑펑 우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성묘때면 홀로 있는 엄마의 묘에 절을 하는 배 다른 동생들의 아픔을 아시고 어머니께 불효를 해서라도 동생들의 한을 풀어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태어날때 ‘양반’으로 태어나서 조상 덕에 먹고 살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후실 자식으로 태어나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못 부르는’ 세상도 지났고, 정실만 묘자리를 남편 옆에 쓰는 시대도 지난것 같다 . 그리고 이제는 이혼하고 재혼하는 일이 많아져서 그런 부모한테서 태어 낳다고 자식들이 흉 잡일 일도 아닐 뿐더러, 부모들의 묘를 구지 합장할 명분도 많이 약해졌다.  한편, 이런 맹랑한 생각도 든다. 과연 돌아가신 분들 모두가 죽어서도 배우자 옆에 같이 눕고 싶을까?  하는.. 어떤이는 살아 생전에 배우자가 왠수 같아서 이승에서라도 혼자 있고 싶어 할수도 있는데, 자식들이 체면과 욕심 때문에 망자의 자유를 뺐았는것은 아닐까?
 
나는 아내에게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 달라고 했다. 후손들이 살 땅도 부족한데 죽어서까지 이 세상의 땅 한평을 차지하고 있고 싶지 않고, 또 자식들에게 내가 묻힌 곳을 표시해 놓고  때마다 찾아 오라는 무언의 압력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곳에 와야만 나와의 추억이 생각나는 것은 아닐테고, 아내가 나중에 내 옆에 묻힌다고 아내와 저승에서 영생 해로하는 것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혼자 남은 아내가 재혼이라도 하게 되면, 아내가 '어느 옆으로 갈까' 고민할 필요가 없겠끔 해주려 한다.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묻혀있는 장소 때문이 아니라 죽은 사람과의 추억 때문일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나는 내 아이들에게 그들이 상주황씨 시정공파 27대 손임을 강조하지 않으려 한다. 물론 자신을 뿌리를 알고 자긍심을 갖는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너무 갖고 사는것은 더불어 사는 ‘세상 이웃’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이다. 자기의 출신 성분을 내세우고, 출신 학교, 출신 지방, 출신 나라를 내 세우는것은 ‘자신은 특별하다’ 라는 근거없고 유치한 발상에서 비롯된다. 자신은 노력한 것이 없는데 어느 부모의 몸을 빌어 어디에서 태어난게 그것이 무슨 내세울 만한 일인가? 그리고 그런 발상으로 부터 ‘우월감’이 잉태되고, ‘차별’이 태어나서, ‘미움과 증오’로 끝을 맺게 된다.  
 
인간이 강아지도 아닌데 뿌리. 혈통 운운하는것도 우습다.  나의 자식들만 하더라도 부계 사회에서 태어나서 황씨성을 갖게 되었지면, 생물학적으로는 나와 아내의 유전자를 반반씩 물려받았다. 나는 시정공파 25대손 아버지와 김씨성의 엄마의 유전자를 반반씩 가지고 태어났고, 아내는 배씨성의 장인과 김씨성의 장모 유전자를 반반씩 가지고 태어났다. 그런데 우리 아들들이 상주 황씨 시조인 1대 할아버지와 무슨 유전적 연관성과 의미가 있겠냐는 말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있어 그들의 뿌리는 양쪽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국인이고 엄마 아빠가 한국인 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충분하다.
 
다행히 나와 아내의 양 부모님들이 아직까지 살아 계신다.  하지만 얼마후면 필연적으로 그분들과 이승에서의 작별을 맞이할 것이다. 자식이 나 혼자가 아니라 독단적으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어디로 모실건지의 문제는 그분들이 정신이 맑으실때 직접 의논하고 결정해야 겠다.  만약에 땅에 묻히시기를 원하시면 미리 확답을 받아 놓으려고 한다. 당신들 손자들에게 묘소을 관리하고 찾아 오라고 강요할수 없으니, 내가 죽기 전까지 묘소를 돌본 후에 그후로는 묘소를 없애고 화장을 해서 재를 원하시는 곳에 뿌려 드리겠다고. 그분들이 조금 섭섭해 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쩔수는 없다. 자식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줄수 없듯, 부모가 원하는 것이라고 해도 내 후손들에게 까지 짐을 물려 주면서까지 따르고 싶지 않다. 후세들에게 선대의 묘를 대대손손 지키라 하는것은 '유한'한 인간의 시작과 끝을 '무한'케 하려는 선조들의 작은 욕심일 것이다. 
 
죽은자에 드리는 제사보다 죽기전 산자와의 추억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부모님들의 묘자리와 제사를 걱정하기 보다는, 자주 찾아 뵙고 그분들과 내가 기억할수있는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 하겠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나의 자식들에게 바라는 것 이기도 하다. 죽은자에 드리는 제사보다 산자에게 드리는 '산 제사'가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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