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이키

엄마와 나이키

by 황가네 막내 (Posts: 0) » about 6 years ago

요즘은 엄마가 말하시는것의 진의를 파악하는 재미에 빠져있다. 단순한 '사양', '완곡한 거절' 또는 늘 말하시는 '괜찮다'를 넘어서 하시는 행동. 말씀의 톤(tone). 대수럽지 않게 말씀하시는 스토리등을 관찰해 보면 엄마의 귀여운(?) 매력에 빠지곤 한다.옆에 살면서 관심있게 보아 왔다면 대수롭지 않은 발견이겠지만, 15살이후 떨어져 지냈던 시간도 많았고 무엇보다도 5남매중 막내인 나는 사랑받는것에 더 익숙해져 있어서 그 발견이 늦어진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더 늦기전에 이미 오십줄에 들어선 나의 기억이 희미해지기전에 엄마의 진의가 파악될 때마다 그때그때 기록해 놓으려 한다. 
 
1. 엄마와 나이키(2018년 8월 9일) 
 
엄마를 모시고 아버지가 계시는 안중 요양원에 가는 길이었다. 안중시내에 들어섰을 때 엄마가 몇몇 할머니가 시장골목에 서 계시는 것을 보고 당신 노인대학 동기들이라고 하시며, 말 끝에 그중 한명이 '구멍이 숭숭 뚫린 여름 운동화를 새로 샀다고 시원해 보였다'라고 하셨다. 늘 그랬듯 엄마가 말하실때는 질문인지 대화인지 아니면 혼잣말을 하시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특히 요즈음은 엄마 귀도 잘 안들리셔서 엄마와의 대화는 둘다 겉도는. 연결이 않되는 대화가 부지기 수이다. 다행히 내가 엄마의 코멘트를 픽업해서 "하나 살래?" 했더니 엄마가 "에이, 나 운동화 몇켤례나 있어" 하시며 금방 사양을 하셨다. 그러시고는 곧 "요즘 신발은 잘 떨어지지도 않아서 오래 신어" 하신다. 
 
극구 사양하는 엄마를 모시고 안중을 지나 평택가는길 중간에 나이키 매장에 들렸다. 엄마는 그제서야 이.삼만원이면 사는것을 왜 이런데 오냐 하시며 마지못해 매장 안으로 들어 가시고는, 나이키 매장 특유의 진열과 실내 장식에 비쌀것을 직감하시고 점원들에 보여주는 신발들에 계속적으로 찐따(?)를 놓으셨다. 점원들이 엄마 신은 신발보다 훨씬 멋있다고 꼬시면, 엄마는 이게 이래봐도 물건너 온거라고 맞대응을 하셨다. 엄마는 셋째누나가 사다준 페플색 New Balance를 신고 계셨는데 점원들이 뭐라하건 물건너 왔다는것만 계속 강조를 하셨다. 엄마가 선택을 못할것 같아 내가 나서서 엄마한테 어울리는 핑크색 신발을 샀다. 엄마는 신발이 십만원이 넘는다는것에 한번 놀라고, 정찰제라 안 깍아주고 양말 한짝도 사은품으로 못받는다는 사실에 다시한번 놀라며, 그래도 신발이 맘에 드시는지 새 신발을 신으신채로 매장을 나왔다. 
 
아버지가 계시는 요양원에 들러서 준비해간 간식을 드시게 하고 물리치료하는데 안가겠냐고 하니까 안간다고 하셔서(지금 생각해보니까 이것도 반 강제로 하게 했어야 했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시라고 하고 나는 에어컨을 보러 가겠으니 요양원에 쉬고 계시라고 했다. 사실 그날의 기온은 36도를 웃돌고 에어콘이 없는 시골 엄마집은 낮에 머무를곳이 못됬다. 
 
오후 4시반쯤 평택에서 엄마를 픽업하러 안중요양원을 가는데 도로 공사를해서 길이 많이 막혔다. 가는길이 국도 하나뿐이라 돌아갈 수도 없고, 시간은 늦어지고해서 기다릴 엄마생각을 하니까 안달이 나서 5시쯤 요양원에 전화를해서 누구누구 아무개 아들인데 길이 막혀 좀 늦어 지니까 엄마한테 말씀드려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시라 전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5시 반쯤 요양원에 도착을 했다. 요양원은 2층에 위치해 있는데 입소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안전을 위해서 방문자의 입.출입이 통제되어 있고, main door에 들어오면 외출화를 벗어서 신발장에 놓고 실내화로 갈아신어야 간호원 reception area을 거쳐 입소해있는 환자들을 접견할수있는 구조이다. 
 
간호원 reception area를 거치는데 한 간호원이 어머니가 나가서 기다리시겠다고 고집을 피우셔서 밖이 더우니 안에서 기다리시라고 나가시려는것을 막느라고 혼났다고 나를보자마자 하소연을 했다. 그리고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마치 군대간 아들이 휴가나온것처럼 반색을 하셨다.  
 
엄마를 모시고 요양원에 나오면서 엄마가 늘 그렇듯 혼잣말인지 아니면 나한테 하시는 말씀인지 모르게 읇조리셨다. "아 그것들이 신발이 걱정되서 나가보려고 하는데 자꾸 막아서, 신발때문에 그런다고 말할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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