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누이

둘째 누이

by 황가네 막내 (Posts: 0) » about 5 years ago

요즘은 횟수가 많이 줄었지만, 나와 아내가 부부싸움을 하기라도 하면 영락없이 둘째 누나는 나에게 전화를 해서 아내 편을 들며 나를 혼낸다.아내가 시누이인 나의 누나에게 전화해서 ‘누나 동생’이 잘못한것을 낱낱이 고해 바치기 때문이다. 한국적 사고 방식으로는 시누이에게 동생을 험담하는 것은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겠지만 아내와 누나 사이에는 일상적인 일이다. 누나가 아내를 친동생처럼 각별하게 생각하고 아내도 누나를 친언니처럼 생각하니까 그런 상황이 가능한것 같다. 심지어 아내는 누나를 부를때 내가 부르는 호칭에 맞춰 ‘누나’라고 부르고 매형을 ‘매형’이라고 부른다. 누나와 매형도 아내의 이름을 부를때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아내의 이름을 부른다. 누가보면 콩가루 집안이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우리끼리는 극히 자연스럽고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 관계의 중심에 있는 나는 확실한 내편이 없어 때론 피해를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우애있게 지내는 모습이 좋고 오히려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누나와 아내의 사이가 처음부터 각별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내가 낮을 가리는 성격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 애 낳고 맞벌이하며 사느라 누나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니지 못한 이유가 더 컷던것 같다. 가끔 만나 식사라도 할때면 밥값 계산은 생활이 우리보다 넉넉했던 누나와 매형의 몫이었다. 그리고 헤어질때면 누나는 어김없이 바리바리 싸온 밑 반찬들을 아내에게 건내주곤 했는데, 거의 매번 밑반찬을 싸온 봉투 밑에는 꼬깃 꼬깃한 지폐가 들어 있었다. 아내가 먹고 싶은것 있으면 사먹으라는 간단한 손편지와 함께..  ‘사랑을 받아봐야 줄수 있다’는 말처럼 누나의 고생하는 올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전해 지니까 아내도 그 애틋함이 눈물나게 고마워 하고, 그렇게 둘의 사이는 각별해진것 같다.
 
아직도 시카고의 겨울이 끝나지 않은 올해 3월경, 매형의 형님 내외분이 한국에서 시카고를 방문하셨다. 누나네가 그분들과 남미 크루즈 여행을 같이 가려고 초대했기 때문이다. 여행 가기전에 1주일정도 누나집에서 머물고 계셨는데, 그때 아내가 열과 성을 다해서 그분들을 챙겼다. 먼저,식사는 시카고 야경이 내려다 보이는 최고급 식당에서 모셨고, 주말에는 그분들을 모시고 쇼핑을 다녔다. 아내는 주중에 늦게까지 일을하고, 자기 몸 하나도 추스리기 버거운 체력인데 쉬어야 할 주말에도 그분들에게 보통 정성을 들이는게 아니었다.  문론 그분들이 좋으신 분들이긴 하지만 평생 두번밖에 안본 분들이고 한치걸러 두치라고 시누이의 시아주버님 내외분인데, 아내가 도리를 해야만 하는 관계는 아니다. 그런 아내의 정성에 내가 의아해 하는것 같으니까, 아내가 그 이유를 말해 줬다. 누나와 매형이 소중하니까 그들의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아주버님 내외분들이 소중한 거라고. 그리고 그분들에게 잘 하므로써 누나와 매형의 얼굴이 선다고. 그말을 듣는 순간“니 남편한테나 잘하셔!” 하면서 쫑크를 주며 지나갔지만, 속으로는 아내의 ‘영악’함에 다시한번 놀라며 ‘내가 참 현명하고 좋은 사람과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 부부와 사돈 어른들이 크루즈 여행을 다녀온후, 우리 부부와 모두 함께 쇼핑센터에 쇼핑을 갔다. 그전에 아내가 그분들을 모시고 쇼핑을 갔는데, 누나의 부탁으로 매형 형수님 가방을 사드리려 했는데 그분이 가방은 마음에 들어 하시는것 같은데 끝끝내 사양을 하셨다고 한다. ‘누나도 좋은 가방 하나 없는데 힘들게 일해서 번 돈으로 어떻게 자기가 가방을 사느냐’고 하시면서. 그때의 실패 때문에 이번에는 누나네 부부와 나까지 쇼핑미션에 투입된 것이다.

가방 매장에서 누나와 아내는 마치 월말 영업목표를 못채운 영업 사원처럼 분주하게 움직였다.이 가방 저 가방을 형수님 어께에 메어 주며 ‘내가 보기에는 이게 낫다’ 하면서 나름대로의 이유를 댓다. 나는 여자들이 가방을 매고 다니는 용도가 그렇게 많은지를 그때서야 알게 됬다. 한시간도 넘게 누나와 아내의 노력으로 결국 2개로 선택이 압축됬는데, 형수님이 또 다시 ‘누나가 힘들게 일해서 번 돈으로 어떻게 자기가 가방을 사느냐?’며 눈물까지 보이며 파토를 내려 하셨다. 그러니까 누나가 ‘매형이 고등학교때 형님댁에 얹혀 살면서 형수님 신세를 많이 져서 고마와서 사드리고 싶어 하는거다’라고 설명을 하니까 그제서야 형수님이 조금 수긍하는 눈치셨다. 이때 ‘영악한(?)’ 아내가 끼어 들었다. ‘오빠도 고등학교 다니면서 자취할때 누나가 주말이면 와서 청소하고 밥해줬으니까 오빠도 누나 가방 하나 사주면 되겠네!’ 하면서 분위기를 몰아갔다. 결국 모두 깔깔거리며 자연스럽게 가방 두개를 사고 매장을 나왔다.

그 다음날 아침에 일찌감치 누나한테서 문자가 왔다.

“사랑하는 아우들 잘 살아줘서 너무 고마워. 내가 그냥 좋아서 받는거야. $xxx 넘는것도 쉽게 살수있는 능력이 있어 내가 너무 좋아. 어제 추운데 애 많이 썼어. 이런게 끈끈한 정이고 서로에게 든든한 힘인것 같아. 항상 건강 챙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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