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투쟁

결혼 투쟁

by 황가네 막내 (Posts: 0) » about 3 years ago

아내가 좋아하는 한국 TV 드라마에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여 주인공은 신데렐라처럼 보잘것 없는 집안 출신이지만 예쁘고 착하다. 그리고 재벌 2세 왕자님은 가진 척도 않하고 인간성도 좋은데다 잘 생기고 똑똑하기까지 하다. 둘은 조건은 전혀 보지 않고 오직 상대방만 보며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주위의 온갖 회방을 이겨내고 결혼에 골인해서 해피엔딩을 맺는다. 그 뻔하고 뻔한 스토리를 보면서 아내는 여자 주인공이 되어 잠시나마 비현실 세계로의 여행을 떠나는것 같다. 이런 신데렐라 스토리에 한국인들만 열광하는 것은 아닌것 같다. 1990년 개봉해서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영화 Pretty Woman도 신데렐라 스토리인데,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은 것을 보면 동 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기본 심리는 별반 다를게 없는것 같다. 잘생긴 리차드 기어가 팔장을 끼고 앉아서 점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명품 옷을 입어보는 줄리아 로버트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수 있겠다. 나를 비롯해서 많은 남성들은 그 장면을 보면서 잠시나마 영화속 리처드 기어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능력있는 남자'가 되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이런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주인공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회방꾼 들이다. 신데렐라에서는 계모, 재벌남에게는 갑질하는 어머니와 집안에서 선택한 착한 척하는 재벌녀, 그리고 리차드 기어에게는 자신의 오른팔 변호사등 이다. 주인공들은 회방꾼들의 모함에 빠져 잠시 오해하고 흔들렸다가, 이내 ‘참사랑’을 깨닫고 드라마틱하게 해피엔딩을 맞는다.  사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청춘 남녀가 만나 축복속에 결혼하고 해피엔딩을 맞으면 무슨 극적 재미가 있을까? 그러나 현실에서 결혼을 앞둔 커플에게 드라마처럼 가족으로부터 심한 반대를 겪는다면 당사자들은 마음의 상처을 입을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처는 오래도록 잘 아물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나는 아내를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때 만났다. 그전에도 캠퍼스에서 아내를 몇번 본적은 있었는데, 소위 노는 물이 달라서 이야기를 나눠보진 못했었다. 그 당시 나는 시카고에 여자 친구가 있었던 껄렁껄렁한 학생이었고 아내는 박사과정의 국비 장학생과 썸을 타고 있던 중이었다. 공대생인 아내는 마지막 학기에 컴퓨터 프로그래밍 클래스를 들었는데 풀리지 않는 프로그램 숙제 때문에 본인이 알고있는 모든 컴퓨터 전공자 인맥을 동원하여 묻고 다니다가 결국 나한테 까지 오게 됬다. 나는 숙제를 열심히 도와주다가 겉으로 보기와는 다르게 착하고 순수한 아내의 반전 매력에 사랑에 빠지게 됬고, 아내는 (나중에야 알게 됬지만) 돈이 없어도 전혀 기죽거나 창피해 하지 않는 나의 당당한 모습에 빠졌다고 한다. 어쨋든, 나는 고무신을 꺼꾸로 신은 천하에 나쁜놈으로, 내 아내는 사모님이 될수있는 찬스를 차버린 철없는 여자로, 그렇게 우리는 사랑를 했고 결혼을 약속하게 됬다. 
 
우리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한다고 하니까, 장인 어른이 심하게 반대를 하셨다. 결혼한다고 계속 우기면 당신의 딸의 머리를 깍여서 산에 보내겠다며 협박아닌 협박을 하셨다.  내가 한국에 가서 인사를 드리겠다 해도, 경상도 말로 ‘택도 없다’ 하시며 나란 사람을 만나 보려 하지도 않으셨다.  그당시 나는 변변치 못한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사회 초년병이었는데, 장인어른의 사위에 대한 기대치에는 턱없이 부족했었나 보다. 장인어른은 여느 아버지들처럼 하나밖에 없는 딸이 세상에서 제일 이쁘고 똑똑하다고 생각하셨고, 실제로 방구깨나 뀌는 집안에서 중신도 들어 왔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까, 입장을 바꿔서 내가 장인어른 이었어도 그 시절 나한테는 딸을 주고 싶지 않았을것 같기는 하다. 어쩔수없이 나와 아내는 장인이 참석하지 않은채 간단한 약혼식을 올렸고 그후로 1년 남짓 장인과 지루한 '결혼투쟁'을 하게 됬다. 
 
우리가 약혼식을 강행하자, 장인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전략을 감행하셨다. 시골에 계시는 나의 부모님을 찾아가신 것이다. 엄마는 사돈될 양반이 찾아 오신다고 하니까, 식사를 준비하고 맞으셨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장인어른은 수저도 들지않고, '왜 두사람을 지금 결혼 시키면 안되는가?' 하는 이유를 전직 교수, 현 신문사 논설 의원답게 논리 정연하게 열거하시며 우리 부모님을 설득하려 하셨다. 내가 그 자리에 있지 않았지만 장인어른의 반대 논리는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부모님도 아무리 배운것 없고 촌로이지만, 장인이 하는 말이 '당신 아들이 부족해서 내 사위 될 자격이 없소' 인줄은 파악하시고도 남았다. 아버지는 그 만남에 대하여 그 이후로도 나에게 함구하셨는데, 엄마는 속이 상해서 '내 아들도 누가 딸 줄 정도는 됩니다' 라고 반론을 하셨다고 헀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반론 이었다기 보다는 엄마의 작은 '울부짖음' 에 가까왔을 것이다. 
 
그때 부모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당신들에게는 자랑스러운 막내 아들인데 남에 눈에는 부족해서 딸을 줄수 없다는 말을 듣는 부모 심정은 어떠했을까? 솔직히 그때는 내가 부모입장이 되보지 못해서 부모님의 상처 깊이를 헤아리지 못했다. 그런데 나도 자식을 키우다 보니까, 그 사건이 부모님한테 얼마나 깊은 상처가 됬었을까 새삼 느낄수가 있게 된것 같다. 
 
상처만 남긴 나의 결혼 투쟁은 아내가 첫애 알랙스를 혼전 임신하고 막을 내렸다. 장인 어른이 어쩔수 없이 우리의 결혼을 승락 하시게 된 것이다. 그때의 일 때문인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와 장인과의 관계는 소원한 편이다. 사위와 장인 사이가 살가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냐 만은, 그래도 내 생각엔 나와 장인과의 사이에는 뭐라 설명할수 없는 감정적 거리감(emotional distance)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것 같다. 누군가 나를 옹졸하다고 비난해도 어쩔수 없다. 나 혼자만의 상처가 아니고 부모님한테까지 상처가 되서, 자식으로써 '꽁'한 마음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을 부인할수 없다.  아마도 장인은 이런 사실들을 모르실 것이다. 어떻게 보면 딸 가진 부모 입장에선 당연한 처사 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방 부모에겐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상처도 깊게 패인다. 
 
우리 부부의 결혼에 결정적인 역활을 한 알랙스가 어느덧 첫사랑과 장래를 약속하고 결혼을 앞두고 있다.  25년전 나와 비슷한 처지지만, 틀린점은 둘다 각자의 부모에게 축복을 받으며 결혼으로 향해 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며느리될 아이는 아내의 친한 친구 딸인데, 나와 아내는 혹시나 실수로 상대 부모에게 상처 되는 말이나 하지 않을까 조심 또 조심하고 있다. 다들 귀하게 키운 자식들인데 행여나 자기 자식 사랑이 지나쳐서 상대방 자식에게 상처나 주지 않을까 여간 조심스러운게 아니다. 아마 친구 부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알랙스와 피앙새가 세상적 기준의 결혼 준비는 아직 덜 됬다 하더라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인생의 긴 여정을 같이 할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는것 같다. 인생 선배로써 볼때 그것 만으로도 결혼할 준비는 충분한것 같다.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사위. 며느리가 아니면 어떠랴?  내 자식의 배우자가 내 자식을 사랑하고 아끼며 힘든 일도 같이할 마음의 준비가 되 있는데, 부모로써 더 바랄게 무었이 있겠는가?  
 
알랙스가 하루 빨리 결혼을 해서 나에게 손주를 안겨 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그 아이를 시골에 계시는 엄마에게 안겨 드리고, 또 서울에 계시는 장인께도 안겨드리야 겠다. 엄마의 상처가 설령 그때까지 남아 있다 할지라도 증손주를 안아보면 그 상처는 봄눈 녹듯 일시에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나도 할아버지가 되서까지 외증조부에 꽁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나의 손주한테 창피한 노릇이니 그전에 빨리 묵은 감정을 털어내야겠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다고, 알랙스가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 손주 타령을 하면서 묵은 숙제를 않한 핑계를 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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