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안하면 중간은 갈텐데.

말만 안하면 중간은 갈텐데.

by 황가네 막내 (Posts: 0) » about 5 years ago

연애시절 아내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나의 습관에 늘 불만이었다. 식당에서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을 관찰하고, 운전하면서도 보도를 걷고있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복장을 하거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아예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곤 했다.  아내는 "왜 자기한테 집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냐?" 하며 따지기도 했고, "자기와 같이 있는게 창피해서 그러냐?" 며 생트집을 잡기도 했고, 그런 모습은 예의없는 행동이라며 나를 타이르기도 했다.  아내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십이 넘은 지금까지 이 '점잖치 못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런 행동이 그렇게 까지 잘못된 행동이라고 느끼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그리고 구지 변명을 한다면 시골 출신이라 아직까지 촌스러운 매너가 남아 있어 그런게 아닌가 싶다.  
 
나의 이런 관찰 습관의 대상은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가까이는 아내를 관찰하고, 두 아들들을 관찰하고, 회사에서는 직원들을 관찰한다. 희머리가 삐져 올라오는 아내의 머리카락를 보고는 "염색할때가 됬네" 하고 말하거나, 책상에 오래 앉아 있어 똥배가 약간 나온 큰 아들에게는 "우리 아들 똥배 나왔네" 하고, 직원 얼굴이 아침에 푸석해 보이면 "어제 술마셨어?" 하고 묻는다. 묻는 나는 큰 의미 없이 그냥 하는 말이고 주위 사람들도  평소 나의 스타일을 아니까 우스갯소리로 치부하고 그냥 넘어가는데, 아내는 종종 발끈해 하곤 한다. 아내는 "말을 안하면 중간은 가는데 꼭 말을 해서 크래딧을 다 잃는다"며 나를 질책한다. 그러면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 고 하며 변명을 해보지만, 그것이 때 늦은 변명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안다. 
 
사실 주위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사는것은 무관심하게 사는것 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예전 내가 살던 시골 마을에 누가 시집을 오거나 외지 사람이 자가용을 타고 오면 마을 사람들은 당사자가 무안할 정도로 관심을 표현했는데, 그렇게 과한 관심도 문제지만 요즘처럼 이웃의 위급한 상황도 못본척 지나치는 무관심이 더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관심과 무관심의 차이,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 차이의 판단은 개인마다 다를수 있다. 그런데 만약에 그 견해 차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다면 주체자의 의도 보다는 피 주체자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본다. 예를 들면, 여직원이 퇴근후 남자 친구와 데이트 하려고 나름대로 꾸미고 출근했는데, 부장이 보고 "xx씨 오늘 좋은 일 있나보네" 하면 관심이고, 여직원 몸매 좋은 것을 칭찬하면 프라이버시 침해이고 성희롱이다.  부장이 아무리 좋은 뜻으로 얘기 했다고 우겨도, 부장의 눈길과 코맨트에 여직원이 자기 몸에 벌래가 기어가는 느낌을 받았다면 그것은 부장의 선한 의도가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관심을 가지고 주위를 관찰하는 성향 자체도 나쁘게 볼수 만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상대방이 불편해 할수 있는 부분을 관찰하는 것이고,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묻지도 않았는데 '관찰 평'을 하는 것이다. 눈은 보라고 있고 입은 말하라고 있어서, 봐도 못 본척 하고 말하고 싶은데 침묵 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나같이 주위가 산만하고 장난기가 많은 사람에게는 '보고도 못본척' 하며 침묵 하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다. 그래서 매번 바보같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흰머리 나서 자신도 속상한데 '흰머리 났다'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남편, 공부 하느라 스트레스 받고 운동도 못해 몸이 불은  아들에게 '똥배 나왔다'고 장난 치는 아빠, 전날 과음해서 쉬고 싶은데도 가장이니까 억지로 출근한 직원에게 자신의 날카로운 눈썰미를 자랑하는 보스, 그것이 나의 모습이다. 이러한 나의 모습을 젊었을때야 장난기로 봐 줄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내 나이엔 이것은 분명한 '푼수'이고 미 성숙한 행동일 것이다.  
 
사실, 관심 어린 관찰을 하고 배려 있는 관찰평을 한다면 당연히 바람직한 일이다. 설령 쑥스럽고 어색하게 말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심이면 말한 사람의 선한 의도를 곡해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흰머리 올라온 아내가 안스러워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오늘 일찍와, 내가 저녁에 염색 해줄께"  했는데 남편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면 그런 여자 하고는 더 이상 같이 살면 안된다. 공부 하느라 움직이지 않아서 똥배 나온 아들에게, "몸까지 망가져가며 공부하는 네가 아빠는 너무 자랑스러워! 시험 끝나고 아빠랑 같이 운동하자. 우리 아들 화이팅!' 했는데 아들이 신경질을 낸다면, 그 애는 빨리 군대에 보내야 한다. 숙취로 힘들어 하는 직원에게, "책임감 있게 출근해서 고맙긴한데 그러면 일에 집중할수 없고 동료들한테도 방해가 될수있어. 그러니 2시간 줄테니까 사우나하고 한숨 자고와서 그대신 2시간 야근하고 퇴근해" 했는데, 그런 보스를 원망한다면 그 직원은 해고 해야 마땅하다. 
 
영어에 'Walk before you run' 그리고 'Think before you speak' 라는 표현이 있다. 뛰기 전에 걷는 법 부터 배우라는 말이고, 말하기 전에 생각부터 하라는 말이다. 내가 주위 사람들을 관찰하고 덕이 되는 말까지 하려면 하루 아침에 되는것은 아닌것 같고, 상당한 수양과 노력이 필요한것 같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수양이 쌓이기 전까지는 우선 따듯한 시선으로 주위를 관찰하고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겠다. 그리고 내 마음이 너무 뜨거워져서 더이상 참을수가 없으면 그때 나의 관찰평을 해야겠다. 그때까지는 아내의 조언대로 입을 다물고 있어야 겠다. 그것이 조금이나마 쌓아 논 크레딧을 잃지 않는 길이고, 별다른 노력 없이 중간까지 가는 지름길 이라는 아내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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