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오영

황오영

by 황가네 막내 (Posts: 0) » about 5 years ago

어린 시절 살던 시골집 처마 밑에는 오래된 제비집이 있었다. 같은 제비인지는 모르겠으나 봄만 되면 남쪽에서 겨울을 지낸 제비가 어김없이 돌아왔다. 주로 커플로 돌아 오는데, 오면 겨울내 비웠던 집을 수선하곤 알을 낳고 보금자리를 꾸민다.제비집은 지푸라기 또는 가느다란 나뭇가지들 사이에 진훍을 붙여서 만들기 때문에 다른 새집들에 비해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고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이 없다.  
 
연말에 가족들을 데리고 부모님을 뵈러 귀국을 했다. 요양병원에 2년 가까이 계시는 아버지가 이제는 엄마도 못 알아 보실 정도로 상태가 나빠져서, 어쩌면 이번 방문이 마지막 인사가 될것 같아 명년에 결혼하는 큰아들 약혼녀까지 데리고 왔다.  할아버지의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을 보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다소 충격적 이겠지만 우리의 뿌리였고 나의 미래 모습인 할아버지의 마지막 때를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4개월 전 뵈었던 모습이 아니었다.그때만 해도 간간히 나를 알아 보셨는데, 이제는 눈뜰 기운도 없으신지 오른쪽 눈만 반쯤 뜨고 계시며 "배고퍼", "머리 아퍼" 하실뿐,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혼잣말을 하시는지 분간키 어려웠다. 점심으로 나온 죽을 막내 며느리가 떠먹여 드릴때도 눈은 거의 뜨지 않으시고 입만 벌려서 드실 뿐이 었다. 아내는 중간 중간 "아버지, 선영이 왔어요", "준원이도 색시 데리고 인사하러 왔어요" 하면서 시아버지의 반응을 살폈으나 전혀 대응이 없으시고, 입만 벌려서 죽을 받아 드셨다. 마치 알에서 부하한지 얼마 않된 새끼 제비들이 눈도 뜨지 못하면서도 부모 제비가 물어온 벌래를 본능적으로 입을 벌려 받아먹는 모습이었다. 
 
2년 만에 시아버지를 본 아내와 큰 아들도, 그리고 생전 처음 본 큰애 약혼녀도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만 해도 치매는 앓으셨지만 거동이 가능하셔서 부축하고 같이 외식도 했었다. 그런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아내와 아들은 아버지의 급격히 변화된 모습에 많이 당황해 하면서도 누구도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병원을 떠날 시간이 됬을때 내가 큰 아이에게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를 해드리라고 했다. 아이도 그것이 할아버지와 마지막 인사인 것을 알기에 기도를 하려고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는 몇마디 하지도 못하고 이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큰 아들에 이어, 큰애 약혼자도, 그리고 아내도 기도하면서 아버지가 '고통없는 좋은 곳으로 가실 것을 확신한다' 하면서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 기도를 알아 들으시는지 못 알아 들으시는지 아버지는 반쯤 뜨신 오른쪽 눈을 간간히 꿈먹 거리실 뿐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의 '인생사'를 들려줬다. 언젠가 제사 때면 아버지가 제사 지내는 조상의 이력을 나에게 말해줬듯, 나도 세상 사람들 모르게 왔다 가시는 나의 아비의 삶을 나의 자식들에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삶 자체가 드라마틱한게 없어서 최대한 담담하게 말해주려 했는데 그럴수가 없었다.병원에서 부터 가까스로 참았던 것들이 예상치 못했던 대목에서 갑자기 터져 버렸기 때문이다. 국민학교만 마치고 13살부터 농사 지으며 산 이야기, 엄마와 결혼해서 열심히 일하며 아끼고 살아서 우리 동내에서 큰 누나가 최초로 대학에 간 이야기. 등등.. 전혀 다른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이 공감할수 없은 옛날 이야기을 하면서 나는 아버지의 낮으셨고 고단했던 삶 덕분에 그나마 평탄했던 우리 오남매의 삶이 떠 올라와 몇번이나 하던 얘기를 멈추고 감정을 추슬려야 했다. 
 
그랬다. 내 아비의 삶은, 벌래를 잡아다가 재재대는 새끼들 입들 중 하나에 넣어 주고는 배고픈 다른 새끼 먹이려고 쉬지도 않고 또 벌래를 잡으러 나가는 부모 제비와 같은, 그런 특별하지 않은 고단한 삶의 연속 이었다. 어릴때부터 농군으로 뿌린만큼 거둔다는 자연의 이치를 깨달으셔서 그런지 당신 몫이 아닌것에 욕심을 부리시지 않으셨다.  매년 봄이 되면 씨를 뿌리고 여름내 일해서 가을엔 노력한 만큼 거둬, 당신에게는 아끼면서 자식들 뒷 바라지를 해 주셨다. 내가 본 아버지는 착한 아들 이셨고, 삼촌들에게는 기댈수 있는 따듯한 마음을 가진 형 이었고, 마을 사람들에게는 선한 이웃 이었다. 그리고 우리 오남매에게는 든든한 제비집 이었고, 우리가 날기 전까지 쉬지 않고 벌래를 물어다 준, 우리의 '가장' 이셨다.  
 
아이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나의 끝 맺음은, "너희 할아버지는 좋은 분(good man) 이셨다" 였다. 세상 사람들이 열광하는 부와 명예는 이룬 것이 없지만, 낮은 곳에서 효심 많은 아들로, 착한 형으로, 좋은 이웃으로, 그리고 '사랑'의 의미를 자식들에게 몸으로 눈빛으로 가르켜준 나의 아비는 참 '좋은 분' 이다. 훗날 내 아들들에게 나도 이런 평가를 받을수 있다면, 나의 삶도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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