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미학

싸움의 미학

by 황가네 막내 (Posts: 0) » about 5 years ago

아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행동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UFC를 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국 정치 토론 프로그램과 청문회를 즐겨 보는 것이다. 팔각의 철조망 안에서 파이터들이 상대방을 쓰러트리려 서로 치고 받거나 목을 조르고 관절을 꺽는 야만적인 행동을 좋아라 입벌리고 보는 나를 아내는 이해 못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산지 30년도 넘고 한국에 투표권도 없는 사람이 왜 그렇게 한국 정치에 관심이 많은지도 이해 못하는 눈치이다. UFC는 몸으로 싸우고 정치는 입으로 싸우는 것인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싸움 구경은 재미가 있다. 그러나 UFC건 정치건 서로 정해진 룰(Rule)안에서 싸워야 재미가 있지, 반칙을 하면 보는 사람도 눈살을 찌프리게 된다.

내가 한국 정치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됬던 것은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 때문 이였다. 사안이 흥미로운 데다가 검사출신 국회의원들이 법조인 출신 증인들을 앉혀 놓고 창과 방패로 찌르고 막는 모습은 나의 직업상 충분히 관심이 가는 장면들 이었다. 증인을 논리적으로 궁지에 모는 날카로운 질문들. 대답을 하면 self-incrimination이 될수 있으니까 요리 조리 피하는 권력의 실세들. 그것을 물고 늘어지며 집요하게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국회 의원들. 숨기려는 자들과 비밀을 밝히려는 자들. 그때는 여야를 막론하고 공공의 적이 있었고, 나라의 정의를 실현코저 힘을 합쳐 사회의 악과 싸우는 모습이 나를 흥분 시키기에 충분했다.

동전의 양면처럼 어떠한 사안에 대해 서로 정반대 되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견해들은 어느 쪽이든 백프로 맞고 백프로 틀리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안에 대해 충분한 토론이 필요하고, 100%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도 다수의 의견으로 룰을 정한다. 그리고 일단 룰이 정해지면 반대했던 소수 의견 자들도 정해진 룰을 따라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이다. 물론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옳다고는 볼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룰 이기 때문에 다수건 소수건 정해진 룰은 모두 따라야 한다.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았던 시절의 소크라테스도 아테네의 룰을 따랐고, 하다 못해 예수님도 땅에서는 땅의 룰을 따랐다.

기존의 룰이 더이상 현실과 맞지 않으면, 바꿀수 있으면 바꾸면 된다. 바꿀수 없게끔 정한 룰은 바꾸려고 하면 안되다. 과거의 룰을 현재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룰을 따랐던 행위자체도 정의라는 미명하에 정죄하면 안된다. 그리고 과거 룰을 만든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내가 안했으니 나는 안 지켜도 된다' 하는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다. 그렇게 한다면 과거 한국 전쟁때 살아 남으려고 밤에는 '김일성 만세' 했다고 낮에 처벌하고, 낮에 '이승만 만세' 했다고 밤에 처벌하던 시절과 무었이 다르겠는가? 정말로 법치주의를 실천하려 한다면 악법도 법이니까 잘 지키야 한다. 정부도 그렇고 대법원도 그렇고,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서 과거의 잘못된 결정을 지금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뒤집으려 하는 것은 오버하는 것이고 오만한 생각이다.

요즘 일본과의 분쟁에 대처하는 정부나 정치인들의 주장을 보면 도대체 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자기의 생각을 소신껏 말하는 것인지, 유권자들에게 어필 하려고 '사이다 발언' 하는 것인지, 아니면 대야 안의 게들 처럼 맹목적으로 상대를 끄집어 내리려 하는 것인지 헷깔릴 때가 많다. 일본이 불화수소 수출 제재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 하는것이 기정 사실화 되고 있다. 일본 내각과 정부는 ‘무댓뽀’ 정신으로 한 목소리로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는데, 대한민국의 정부 그리고 여.야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도 '이때가 기회다' 하며 문제의 원인에 대한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고, 총선을 염두에 두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존재를 부각 시키는 것에만 신경쓰고 있는것 같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체, 문제의 근본 원인을 '똘아이 아베 정부'와 무능한 정부 탓으로만 돌리려고 국민을 선동하는데 있다. 역사 교육에서 일본에게 주권을 빼았긴 것이 순전히 을사오적 탓으로만 돌리려 하는것 처럼 말이다.    

2016년 봄에 출장차 히로시마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거기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원폭 돔'(평화 기념관 이라고 자칭)이 있는데, 이 건물은 원자폭탄이 떨어져 잿 가루가 된 히로시마시에서 유일하게 남은 건물이다. 원자폭탄이 그 건물 바로 위 지상 600m 지점에서 터져(그렇게 해야 폭탄의 위력의 최대치를 끌어 올릴수 있다고 함) 이 건물은 완파를 면할수 있었다고 한다. 70년도 더 지난 지금도 폭발 직후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나는 그때 그 건물을 보면서 일본인들에게 섬뜻함을 느꼈다. 겉으로는 '핵무기는 이렇게 위험하니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다시는 사용하지 말자' 하는 취지로 포장되 있는데,  내 눈에 원폭돔은 재건된 히로시마 도시 빌딩숲 속에서 마치 옛 시골에 상여를 보관해 두던 폐가처럼 음산해 보였다. 그리고 친절한 미소 뒤로 속마음을 감추며 와신상담 하는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후세들에게 '이 역사적 상처를 절대로 잊지 말라'는 비장한 유언과도 같았다.

일본의 극우 세력은 1941년 겉으로는 미국과 평화 협의를 논의하며 미국을 방심하게 한후 하와이 진주만을 (Pearl Harbor) 기습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2010년 중국이 일본으로의 히토류 수출을 규제 했을때, 그들은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 '스미마생' 하면서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중장기 플랜을 세워 5년후 중국산 히토류 의존도를 55%까지 낮췄고, 같은해 중국의 WTO 패소로 결과적으로는 일본이 이 전쟁을 승리했다. 내가 보는 일본인들은 자기들이 이길 승산이 없으면 철저하게 고개를 조아렸다가, 힘이 생겼을땐 가차없이 칼을 뽑아드는 사람들이다.

일본의 불화수소 수출 제재에 대해 정치인들은 앞 다투어 일본을 비판하고 일본제품 불매 운동으로 일본에게 본때를 보여 줘야 한다고 국민들을 선동한다. 이러한 행위를 WTO에 제소 하겠다고 으름장도 놓는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 미쓰비씨 강제 노역 배상 판결등, 사건 발단이 무능한 정부의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우리가 WTO에 제소하고 일본 맥주 안먹는다고 일본이 결정을 번복할 정도로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반도체로부터 시작해 CNC Control(제어장치), 산업용 로봇등 기계산업과 자동차 산업 전반에 걸쳐 한국 경제에 치명상을 줄수있는 규제이다. 그렇치 않으면 그들이 그 카드를 꺼내 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역사를 되짚어 보면 우리 선조들은 똘똘 뭉쳤을때 외부의침략을 이겨 냈지만 서로 쌈박질 할땐 싸움도 못해보고 무너졌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았긴 것도 을사오적이 어느정도 역활은 했지만, 을사조약 이전에 대한제국은 이미 집안싸움으로 적과는 싸움도 못하고 무너졌다. 대원군과 고종이 부자 지간에 권력을 놓고 싸웠고, 민씨 일가는 매관매직으로 백성들의 고혈을 빨았고, 민비는 굿하고 통 크게 사느라 나라 재정을 말아 먹었다. 같은 군대지만 신식 군대만 편애하고 구식 군대에게는 밀린 삯으로 쌀에 겨와 모래를 섞어 주니까, 임오년에 구식 군대가 구테타를 일으켰다. 그런 상황에서 고종과 민비는 권력이 그렇게 좋던지 청나라 군대 이용해서 백성인 구식 군대 몰살시키고, 갑오년엔 개혁파들 제거하고, 대원군은 일본군 등에 업고 며느리인 민비 죽이고... 그런 역사적 낮 뜨거운 사실들을 외면한체 우리는 '명성황후'라는 드라마를 만들어 탈랜트 이미연씨가 '내가 조선의 국모다!' 하며 애국심 쇄뇌 교육을 하려한다. 그렇게 한다고 우리의 자존심을 지킬수 있을까?

자존심은 힘이 있을때 지킬수 있는 것이다. 힘이 있으면 주위에서 건드리지도 않고, 내가 깡이 쎄다고 윗통 벗고 용문신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입만 열면 민생운운하며 국민들을 생각하느라 불철주야 노심초사 한다며 뻥치지 말고, 정말 국민들을 사랑한다면 지도자는 굴욕스럽더라도 무릎도 꿇을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비겁한게 아니다. 후세들에게는 다시는 이런 굴욕을 물려 주지 않겠다고 와신상담 하는 마음으로  무릅을 꿇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용기이고 애국이다. 진정한 복수를 하고 싶다면 길게 보고 내실을 기해야 한다. 퍼주기 식으로 소비를 부추겨 단기적 경제 활성화를 꾀하려 하지 말고, 기초과학 등 당장은 생색이 안나는 분야라도 후세들이 먹고 살수 있겠끔 중장기로 투자 하여야 한다. 그런 정책에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형제들끼리 싸우면 집안 망신이다. 동네 사람들 누구도 '첫째가 옳다 둘째가 옳다' 분석하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그집은 콩가루 집안이라고 평할 뿐이다. 그런데 형제가 싸울땐 싸우더라도 다른 집에서 공격했을때 똘똘뭉쳐 한 마음으로 움직이면 그럼 집안은 동네에서 무시를 못한다. 이웃나라 대만에 무슨 당이 집권했는지 나를 포함해서 대한민국 국민들 95%이상은 모를 것이다. 그들이 국회에서 멱살 잡고 싸워도 우리에게는 이웃집 불구경이요, 관심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21세기 경제 전쟁을 우리에게 걸어 왔다. 우리가 길길이 날뛰며 이웃집에 하소연 할 것이라는 것도 일본의 계산된 시나리오 안에 있을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집안 싸움하다 일본에게 식민지가 됬었다. 그래서 힘없는 민초들이 강제 징용으로, 위안부로 끌려가서 짐승 취급을 당했다. 나라 잃은 설움이 그런 것이다. 정치인들은 그 문제의 책임을 야만적인 일본에 돌려 민초들에게 증오심만 부추기지 말고, 자기들 끼리의 집안 싸움부터 멈춰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일본을 싸워 이길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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