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쿡인
미쿡인
6개월전 시카고에 있는 한국 영사관에서 국적 포기서류를 접수하고, 3주후 국적포기 허가서를 받았다. 20여년 전에 미국 시민권을 따면서 미국 시민으로써의 선서를 할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막상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는 공식 문서를 받으니까 기분이 좀 묘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은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 시민권을 받는 순간 한국 국적이 자동 소멸되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국적 포기 확인서를 받았을때 마음이 묘했던 것을 보면 내가 미국 시민으로 살고 있으면서도 마음속에는 한국인으로 살고 있었나 보다.
이스라엘 여행중 예수님이 탄생한 베들레헴을 가기 위해서 이스라엘과 팔라스타인 국경선(Westbank Wall)을 넘었다. 말이 국경선이지 남미 사람들의 불입국을 막으려고 미국이 쌓고 있는 담처럼, 이스라엘이 눈에 가시처럼 여기는 팔라스타인들이 이스라엘로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삼팔선 같은 담이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램 바로 옆에 있는 도시로 베들레헴 언덕에서 보면 예루살램이 훤히 다 보인다. 그런데 예루살램은 이스라엘 땅에 있어서 번영한 도시이지만 베들레헴은 팔라스타인 영토에 있어 폐허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텐새클 텐새클' 하면서 팔래스타인 패들러들이 손에 기념품들을 들고 우리들에게 몰려 왔다. 남한과 북한처럼 예루살램과 베들레헴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베들라헴에서 우리를 가이드 해준 청년은 아랍계지만 어려서 남미에서 살아 스패니시와 영어를 잘했다. 가이드를 마칠 무렵 이스라엘 쪽에서 같이 넘어간 주책맞은 할머니 가이드가, 그 청년이 맘에 들었는지 자기 딸이 결혼 안했다고 자기딸을 만나보라고 바람을 넣었다. 그 친구는 처음에는 농담처럼 넘기려 하다가 할머니가 집요하게 몰어보니까, 종교문제 등등 현실적인 문제를 말하면서 자기가 팔라스타인 안에 죄수처럼 갇혀 있다며 눈물을 보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스라엘 할머니가 아무 생각없이 동정처럼 던진 말이 냉혹하리만큼 암울한 자기 처지를 다시한번 확인해 주어서인지 팔라스타인 청년은 눈물까지 보였던것 같다. 이 팔라스타인 청년의 암울한 현실은 UN 상임 위원인 미국이 팔라타인이 UN 가입 하는 것을 막고 있는게 가장 큰 이유이다. 나는 미국인으로써 그 청년에게 좀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이 청년을 보면서 국가가 지켜주지 못하면 국민이 삶이 어떻게 되는지 피부로 느낄수 있었다. 나는 나의 노력과 무관하게 재수가 좋아서 나라 잃은 설움도 당해보지 못했고, 전쟁으로 가족을 잃거나 인권이 유린되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래서 John F. Kennedy가 취임 연설에서 성숙하지 않은 국민들을 향해 "국가가 너에게 무었을 해줄까 묻지말고, 내가 국가를 위해서 무었을 할까를 물어라"("Ask not what the country can do for you -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라고 말한것 같다.
나는 때로 한국의 매너 없는 정치를 비판하고, 이기적인 미국 국제 정치를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그 나라들 울타리 안에서 편안하게 살았고, 살고있는 현실은 종종 잊고 산다. 한국 국적은 없더라도, 한국계 미국인으로 살고 있더라도 최소한 두 나라들에 대해서 고마운 마음으로 사는 염치는 있어야 겠다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