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서 내는 잔소리

몸에서 내는 잔소리

by 황가네 막내 (Posts: 0) » about 5 years ago

사람들마다 몸에서 내는 소리는 비슷하다. 어떤 소리는 자의로 컨트롤 할수있는 반면 자의로 컨트롤 할수 없는 소리도 있다. 예를 들면 방구나 트름 같은 것은 컨트롤 할수 있지만, 배가 고파서 나는 ‘꼬르륵’같은 소리는 자의로 컨트롤할수 없다.

나는50세 생일을 하루 앞두고 쓰러졌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는데 다음날 한국 출장을 가기로 되어 있어서, 친구들과 테니스를 치고 저녁식사겸 생일파티를 고깃집에서 하기로 스케쥴을 잡았었다. 아내는 식사가 끝날 무렵쯤 주문해논 케익을 픽업해서 식당으로 와서 자기가 계산을 하고 가겠으니 친구들과 잘 놀라고 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속이 메스껍고 어지럼증이 심했다. 그 전에 두번정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한숨자고 일어나면 그 다음날은 멀쩡했었었다. 그래서 그때는 쳇기가 있나보다 하고 그냥 지나쳤었는데, 그날은 증상이 좀 많이 심했다. 머리는 아프지 않았는데 천정이 빙빙 돌아서 누워 있을수도 없었고 구토도 멈출수가 없었다. 아내는 그 전날 술먹어서 그런거라고 그 와중에도 바가지를 긁었는데, 나는 정신이 없어서 대꾸도 못하고 화장실 바닥에 널부러져서 헛구역질만 반복했다.

미국 이비누과 전문이와 한국의 한의사가 공히 확정 진단한 나의 병명은 메니에르(Menere)라는 불치병 이었다. 병의 발병원인을 모르니까 치료방법이 없는, 불치병이라고는 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그냥 사는데 불편한 그런 지병이다. 대부분의 메니에르는 이명을 동반하고 청력이 많이 나빠진다. 나의 경우에도 왼쪽 귀에서 ‘삐’ 소리와 함께 바람소리가 24시간 나는데, 처음에는 여간 신경 쓰이는게 아니었다. 이 병은 프랑스의 메니에르라는 의사에의해서 처음 세상에 알려졌는데, 고호도 이병을 앓아다 자기 귀를 짤랐다는 설이 있다. 발병원인을 모르니까, 한의사와 양의사의 처방이 달랐다. 한의사는 내가 술을 많이 먹어서 위에 독이 쌓이고 나쁜 가스도 차서 귀에 이상이 있는 거라며 위를 편안하게 해주는 한약을 3개월 처방을 하며 나에게 절주할것을 권유했다. 이비인후과 전문이는 메니에르는 원인도 모르고 치료 방법은 없으나, 몸에 염분이 많아 그럴수가 있다고 인뇨제를 처방해주고 짠 음식 먹는것을 지양하라고 처방해 주었다.

쓰러지기 전까지는 나는 건강에 대해서 자만했었다. 부모님에게 건강한 몸을 물려 받아, 오십까지 특별히 아픈데도 없었고 잔병치례도 별로 안했다. 뭐든지 잘먹고 많이 먹어서 주위에서 부러움을 샀고, 애주가로 정평이 나 있었다. 저녁식사때는 거의 매일 소주 한병정도를 반주로 마셨는데, 주위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나의 목표는 죽기전까지 소주 2만병을 먹고 죽는것이라고 떠벌리곤 했다. 이미 만병 넘께 먹었으니까, 죽기전까지 이만병을 채우겠노라는 유치한 공언 이었다. 아마도 하나님이 이 건방진 소리를 엿 들으신것 같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방 얻어 맞으니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부모님보다 먼저 세상을 뜨지는 말아야 겠다는 생각 이었다. 나도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효도는 못하더라도 부모 살아 생전에 먼저 가는 불효를 저질러서는 안될것 같았다. 그리고 또 생각한 것은 내가 죽더라도 뒷정리는 깔끔히 해서, 뒤에 남은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짐은 남겨 놓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장례식때 감동적인 조사는 듣지 못하더라도, 남은 가족들이 내가 벌려 놓은 일의 뒷처리를 하느라 고통을 겪는다면 그것은 가장으로써 못할짓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잘 알아서 뒷처리를 하겠지만, 그래도 지금 상태로 그냥 죽어 없어지면 ‘죽어서도 자기를 힘들게 한다’는 원망을 들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그때 이후로는 재정적인 면에서는 많이 보수적으로 변했다. 사업적으로도 무리를 하지 않게 됬고, 남겨진 사람들에게 큰 재산은 못 물려줘도 부채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생활하게 됬다.

쓰러지고 난지 이제 1년이 지났다. 처음 3개월 정도는 한약도 잘 챙겨 먹고, 술도 끊고 먹는것도 절제하니까 몸무게도 줄고 혈색도 좋아졌었다. 그런데 나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가 보다. 몸 컨디션이 좋아지니까 슬슬 옛날 버릇이 나오기 시작했다. 술도 다시 먹게 됬고, 식사량도 점점 늘어 가서 식습관은 거의 그때 이전으로 돌아갔다.  왼쪽 귀에서는, ‘간이 힘드니까 술좀 작작 마셔!’, ‘위가 소화하기 힘드니까, 그만좀 먹어!’, ‘근육이 없어 지니까 누워 있지만 말고 운동하며 땀좀 흘려!’ 하고 계속해서 “삐~~~’하며 잔소리를 해대지만, 나는 이 잔소리를 못들은척 무시하고 넘어가곤 한다.  도박에 빠진 사람이 잃을 확율을 무시하듯, 나는 확실하게 잃을 건강을 상대로 바보처럼 계속 배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몸이 되돌릴수 없는 상태까지 가기전에 왼쪽귀에서 내는 잔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지혜가 정말로 필요한 때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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