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에서 일정을 마치고 광명행 KTX 첫차를 탔다. 언젠가 부터 창원 일정은 비행기보다 기차를 선호하게 됬다. 공항의 번잡함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날씨나 기타 상황에 상관없이 정해진 시간에 출.도착하는 기차의 정확함이 좋다. 그리고, 덤으로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을 아무 생각없이 바라 볼수 있어서 좋다. 차창 밖 풍경은 빠르게 다가오다 지나치며 과거가 된다. 기차가 잠깐씩 정해진 역에 설 때면, 내 옆자리 또는 주위 승객들은 각자의 종착역에서 내리고, 나와 서로 눈 인사도 못한채 이별을 한다.
살다보면 만남을 기약하는 이별도 하고, 또 기차에서 만난 승객들 처럼 다시 만날 기약 없는 이별을 하기도 한다. 가족 끼리도 우리는 만나고, 또 만남을 기약하는 이별을 한다. 어찌보면 부부 사이에도 아침 저녁으로 이별과 만남을 반복한다. 출근하는 남편의 양복 어께에 묻힌 먼지를 털어주며 아내는 밝은 얼굴로 남편과 이별을 하고, 술취해 들어온 남편에 눈을 흘기며 만남을 갖는다. 억지인것 갖지만 이건 분명 이별과 만남이다. 그러나 저녁에 곧 만날 것이기에 아침에 웃으며 이별을 할수 있는 것이다.
나와 엄마와의 만남과 이별은 예전에는 3-4개월 간격으로 이뤄졌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한국 입국이 어려워 이번 만남은 거의 2년 만 이었다. 그럼에도 엄마와 나의 이번 만남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엄마는 "어여 와" 하시며 미소를 나를 반기셨고, 나는 "엄마 나 왔어" 하며 엄마 손을 잡아 드리는 정도 였다. 2년 만의 모자 상봉치고는 너무 드라이 했다. 영상 통화 할때는 애절한 마음에 목도 메고 했는데, 막상 만나나까 감정 표현을 쑥스러워하는 ‘시골틱’ 한 모자 사이로 금방 돌아가 버렸다. 그 엄마에 그 아들이다.
엄마와의 짧은 동거도 시골틱 만남의 연장선이다. 가까운 곳에 여행이라도 하자 하면, “여행 하느라 피곤할텐데 푹 쉬다 가라” 하시며 들썩거리는 나를 잡아 앉히신다. 이어지는 대화도 특별하지 않다. 엄마는 손자들 안위만 중간 중간 물으실뿐, 대부분은 내가 모르는 동내 어른들 근황, 먼 친척들 이야기들을 혼잣말 하시듯 하신다. 나 또한 엄마와의 대화는 일상적인 대화가 전부이다. 엄마와 나는 노력해 가며 추억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TV 를 보고, 그리고 서로 잘 알아 듣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같은 공간에서 잠시 시간을 같이 보낼 뿐이다.
엄마와 나의 만남은, 엄마로썬 나와의 또 다른 이별 준비의 시작이다. 내가 도착하자 마자 엄마는 가을내 말렸던 고추 한포대. 들깨 한 말을 들고 방아간에 가셔서 고춧 가루 두 봉다리, 그리고 들기름 한병을 해 오셨다. 그리고는 내가 머무는 동안 '뭐를 더 줘서 보내나' 고민하시며 나와의 이별을 준비 하신다. 짧은 만남에 아쉬워 하시면서도 "더 있다 가라"고 하면 내가 부담을 가질까봐, 이별을 준비하시면서도 아쉬움을 숨기신다.
기차 창 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처럼, 나의 기억. 현실도 추억되어 지나간다. 엄마와 나는 인생이라는 공간 안에서 세월이라는 기차를 타고, 짧은 만남과 긴 이별을 반복 한다. 그 세월의 기차에서 엄마 옆에 앉아 종착역까지 배웅하고 싶은데, 세상 살이는 그것을 나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아쉬움을 쌓으며, 엄마가 다음 만남에도 '그대로 그 자리'에 계실 것이라는 착각속에 담담하게 엄마와 이별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