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여자야!

엄마도 여자야!

by 황가네 막내 (Posts: 0) » about 5 years ago

80년대초 유지인, 장미희, 그리고 정윤희씨가 여배우 트로이카라고 해서 TV와 극장가를 주름잡았던 시절이 있었다. 세 여배우는 서로 다른 매력으로 동 시대 남성들의 로망이었는데, 모두 빼어난 미모이지만 얼굴은 전혀 비슷하지가 않다. 그런데 요즘 TV에 나오는 여 배우들을 보면 누가 누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이런 현상이 내가 '노땅'된 증거인것 같은데 어쨋든 내눈엔 모두 비슷 비슷해 보인다. 같은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했는지 눈도 비슷하고 코도 비슷하다. 심지어 턱도 깍아 얼굴을 갸름하게 하니까, 부모을 닮는게 아니라 성형외과 의사의 기술과 따라 이목구비가 결정된다. 뼈를 깍는 고통을 감내 하면서까지 성형수술을 하는것을 보면, 여자의 예뻐지고 싶은 마음은 선호를 넘어서 본능에 가까운것 같다. 
 
나는 자라면서 엄마가 꾸미는 것을 보지못했다.  시골에서 농사짓고 자식 다섯 낳고 시부모 모시고 사셨으니까, 화장하고 철따라 옷 사입고 하실 엄두도 못 내셨던것 같다.  장날에 읍내에 나가실 때는 얼굴에 로션(그때는 구루모라 했다) 정도는 바르셨는데 루즈나 다른 화장은 하시지 않았다. 그당시 나의 눈에 비친 엄마는 얼굴이 까무잡잡 했는데, 특별히 미인이라고는 생각은 안했지만 그렇다고 이목구비 어느 하나 밉게 생긴데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도시로 시집을 갔다면 얼굴이 햇빛에 타서 까무잡잡 해졌지도 않았을 거고, 화장도 하고 예쁜 옷을 입었으면 전도연씨처럼 아담하고 예쁘셨을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 팔순때 아내가 다이어 반지를 사주자며 나한테 의견을 물었다. 아내는 이전에도 교회에 가실때 치장하시라고 엄마에게 화장품, 옷, 가방등을 내가 한국 출장 가는 편에 사드렸었다. 내가 전해 드리면 엄마는 늘 "내가 화장품 쓸일이 뭐가 있다고", "지난번 사온것도 그대로 있다", "다음부터 절대 이런것 사오지 마라" 등등 항상 비슷한 거절의 반응을 보이셨다. 그런 반응들에 이미 익숙해진 나는 아내가 통도  크게 다이아 반지를 사 드리자는 제안에, ‘팔십먹은 시골 할머니에게 무슨 다이아 반지가 필요하냐?’ ‘엄마는 평생 농사짓고 사셔서 다이아반지 같은거 모르고 사셨다’ 하면서 그럴싸란 논리로 반대를 했다. 그랬더니 아내가, “엄마도 여자야!" 하면서 나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 봤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내 자신이 한심했다. 엄마가 딸 셋낳고 아들 형제 낳았다고 형과 나를 얼마나 편애 하셨는데... 정말로 엄마한테 있어서 아들 놈들은 낳을 때만 좋지 하나도 쓸모가 없는것 같다.  
 
결국, 아내는 다이아 반지를 지인 보석상으로부터 구입했다. 엄마에게는 당분간 비밀로 하기로 하고 한국 출장갈때 깜짝 선물하려 했는데, 엄마와 통화하는 중에 입이 근질거려서 반지 산것을 말씀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깜짝 놀라시며 ‘노인네가 다이아 반지가 왠말이냐?’, ‘내가 끼고 다닐데가 어디 있냐?’ 하시면서, 내가 아내에게 한 반론들을 그대로 읇으셨다. 그리고는 심지어 돌려줄 수 있으면 돌려주고 돈으로 다시 받으라고까지 하셨다. 그때는 간신이 엄마를 진정시켜 드렸는데, 그 이후로 엄마와 통화를 할때면 엄마는 당신 반지의 ‘안위’를 슬며시 묻곤 하셨다. ‘반지같은 것은 도둑맞기 쉽다’고 하시면서 무언으로 '잘 보관할것'을 당부 하셨다.  
 
드디어 문제의 다이아반지를 출장가는 길에 시골에 들려서 엄마에게 전달했다. 엄마는 반지를 끼시고는 입몸을 훤이 보이게 활짝 웃으시며 소녀처럼 좋아 하셨다. “아유 너무 반짝거려서 눈이 다 부신다” 하시면서 평생 농사와 집안일로 마디 마다가 굵어질대로 굵어진 손가락을 부채처럼 활짝 펴고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빛에 다이아가 반사되는 장면을 신기한듯 바라보고 계셨다. 아내 말이 맞았다. 엄마는 엄마이기 이전에, 할머니이기 이전에 그냥 ‘여자’ 였다. 아들놈은 이 평범한 진리를 엄마가 덧없이 팔순이 되서야 깨우친 것이다. 엄마를 시골 할머니라고만 생각했을뿐 엄마도 ‘예쁜것’ 좋아하고 ‘예쁘게’ 꾸미고 싶은 여자라는 것을 모른채 여태컷 살아온 것이다. 엄마의 희생의 삶을 당연하게 받아드리며...  
 
2017년 미국 추수감사절 주에 아내와 첫째 애를 데리고 시골 부모님을 뵈러 갔다. 일요일이 되서 엄마가 다니는 교회에 같이 가기로 했는데, 엄마는 교회에 막내아들. 며느리. 손자를 한꺼번에 대동하고 가는게 흥분되셨는지 아침부터 들떠 계셨다. 이른 아침부터 아침 준비를 하고, 목욕을 한후 분주히 교회 갈 채비를 하셨다. 머리를 만지고, 화장을 하고 연한색의 루즈까지 바르셨다. 그리고는 며느리가 사준 옷. 가방. 시계를 하나씩 차근차근 걸치셨다. 그리고는 냉장고의 냉동칸을 여시고 뭔가를 주섬주섬 챙기셨다. 이상해서 엄마에게 뭐하냐고 물었더니, 냉동칸에서 다이아 반지를 꺼내서 끼고 계신 것이었다. 그러면서 쑥스러우신지, '시골집은 허술해서...' 하며 빙그레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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