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의 변

손자의 변

by 황가네 막내 (Posts: 0) » about 3 years ago

아내는 잔디밭을 어지간하면 걷지 않는다. 잔디를 보호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행여나 잔디밭을 걷다가 거위똥이나 개똥을 밟을까봐 그러는 것이다.  어쩔수없이 걸어야만 하는 상황이면 아내는 결혼식에 입장하는 신부처럼 한걸음 한걸음을 조심스레 걷는다. 반려견인 엘리(Ellie)가 가끔 실수로 집안에다 똥을 싸면 주저없이 치우면서도, 다른 개의 똥은 보는 것도 질색을 한다. 따라서 엘리을 데리고 공원 산책하는 일은 언제나 나의 몫이다. 
 
아내가 첫째 알랙스를 낳고 엄마가 미국에 오셔서 애를 봐주셨을때의 일이다. 한국에서는 엄마가 아기를 키우다 무슨일이 생기면 경험이 있는 친구나 이웃에게 물을수도 있고 또 병원 문턱도 낮아 육아가 수월하지만, 미국에서는 사정이 좀 다르다. 특히 스물넷 어린 나이에 첫애를 낳아 육아 지식이 전혀 없는 아내는 오남매를 키운 베테랑 시어머니에게 의존하며 육아를 하나씩 배워가고 있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이 발달되서 궁굼한것이 있으면 쉽게 찾아볼수 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경험있는 시어머니가 육아에 관한한 아내의 선생님 이었다. 엄마는 일반적인 아이의 상태, 즉 울거나 피부에 열꽃이 있는지 등등을 확인하시고 기저귀를 바꿀 때마다 아기의 똥 상태를 살피셨다. 똥이 묽기라도 하면 나름대로 진단을 내리시고 우유에 섞는 파우더 양을 조절하시곤 했다. 옛날에는 왕의 변 상태를 내의원이 항상 확인했다고 하니, 엄마의 진단 방식이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은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퇴근하고 집에 오니까 엄마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아기가 하루종일 똥을 안눴다고 한 걱정 하시고 계셨다. 아내와 나는 애가 하루 똥 못눈게 무슨 큰일이냐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해도 엄마는 그렇지 않다며 정색을 하셨다. 엄마의 성화에 어쩔수없이 저녁을 부랴 부랴 먹고 우리는 엄마를 도와 아기 '똥 누이기' 작전에 들어 갔다. 엄마가 아기 똥 누이게 하는 방법은 특별한게 아니었다. 아기를 누인후 아랫도리를 벗긴다음 기저기를 푼 상태에서 아이 두발을 잡고, '끙~ 가, 끙~ 가, 끙~ 가'를 반복적으로 외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구호를 외칠때는 마치 변비 걸린 사람이 애쓰듯 ‘끙~’하면서 잔뜩 아랫배에 힘을 주고, ‘가~’ 할때는 힘을 풀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내는 “엄니, 그런다고 애가 말을 알아들어요?” 하면서 깔깔 웃어 댔다. 어머니는 며느리의 장난기 어린 농담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끙~ 가'를 외쳤다. 시어머니의 진지함에 아내는 머쓱해 하더니 이내 엄마의 박자에 맞춰서 '끙~ 가, 끙~ 가, 끙~ 가'를 따라 했다. 
 
두사람의 지속적인 합창에도 불구하고 알랙스는 똥을 눌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자 아내의 얼굴에 웃음기는 사라지고 얼굴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엄마도 걱정스런 표정이 역력했지만  '끙~ 가, 끙~ 가' 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셨다. 그러다가 마침내 아이가 '풉' 소리를 내며 똥을 쌌는데, 두 다리를 잡고 아기의 똥꼬를 주시하고 있던 엄마의 팔과 얼굴에 똥이 튀었다. 옆에 있던 아내는 반사적으로 '어머'하고 피해서 아들의 ‘변’을 피했지만, 두발을 그대로 잡고 계시던 엄마는 '손자의 변'에 당하셨다. 엄마는 손자의 변에 당하고도 안도감 때문인지 아이의 발목을 잡은 손을 놓지 않은채 환하게 웃고 계셨고, 철없는 어린 아내는 아예 발랑 드러 누어서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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